같은 사람인데 이름을 바꾸니 거짓이 됐어요
성능이 같아져도 대체되지 않는 자리가 있어요. 결과물만 쓰는 자리와 누구 이름으로 나가는지가 효력을 좌우하는 자리를 구분해봤어요
AI·테크같은 사람인데 이름을 바꾸면 왜 문장이 거짓이 될까요
16세기 베네치아에 조르조네라는 화가가 있었어요. 본명은 조르조 바르바렐리고요. 조르조네는 이름이 아니라 별명이에요. ‘큰 조르조’라는 뜻이거든요. 덩치가 커서 붙은 이름이죠.
그래서 이런 문장이 성립해요.
- 조르조네는 덩치 때문에 그렇게 불렸어요. → 참
- 바르바렐리는 덩치 때문에 그렇게 불렸어요. → 거짓
같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름 하나 바꿨더니 참이 거짓이 됐어요. 무언가 이상하다는 건 알겠는데, 어디에서 문제가 생기는지 정확히 짚기는 쉽지 않아요.
조르조네의 <카스텔프랑코의 마돈나> 1505년 작품
1971년, MIT의 철학자 리처드 카트라이트가 이 문제에 답을 냈어요. 둘이 같다는 것과, 서로 바꿔 써도 된다는 것은 다른 원칙이고, 앞의 것이 뒤의 것을 보장하지 않아요. 저는 이 55년 된 논증이 지금 우리가 매일 하고 있는 대체 논쟁의 구조를 꽤 정확히 설명한다고 봐요.
우리가 하나로 알던 원칙은 사실 두 개였어요
보통 라이프니츠의 법칙1이라고 부르는 게 있어요. 그런데 그 이름 아래 서로 다른 두 문장이 섞여 있어요.
첫째, 같다는 원칙이에요. x와 y가 같은 것이라면, x가 가진 성질은 y도 가지고 있어요. 이건 세계에 대한 이야기예요.
둘째, 바꿔 써도 된다는 원칙이에요. x와 y가 같다면, 어떤 문장에서든 한쪽을 다른 쪽으로 바꿔 넣어도 참과 거짓이 변하지 않아요. 이건 말에 대한 이야기고요.
대부분은 이 둘을 같은 말이라고 여겨요. 말은 세계를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라고 전제하니까요. 그런데 조르조네 문장은 두 번째 원칙이 그냥 틀렸다는 걸 보여줘요. 반례가 하나만 있어도 원칙은 무너지는데, 우리는 방금 하나를 봤거든요.
그럼 첫 번째 원칙도 같이 무너질까요. 그러려면 조르조네는 가졌는데 바르바렐리는 못 가진 성질이 실제로 있어야 해요. 그게 뭘까요.
‘덩치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는 성질일까요. 여기서 걸려요. ‘그렇게’가 무엇을 가리키는지가 문장 밖에서는 정해지지 않거든요. 조르조네라고 불린다는 뜻인지, 바르바렐리라고 불린다는 뜻인지는 그 문장에 어떤 이름이 들어와 있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앞에 아무것도 없으면 ‘그렇게’는 아무것도 가리키지 못해요.
카트라이트가 짚은 지점이 여기예요.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문장이었어요. 그 문장은 한 사람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 게 아니었거든요. 그 사람을 부르는 이름에 대해서도 동시에 말하고 있었어요. 이름은 대상에 아무렇게나 붙였다 뗄 수 있는 표시가 아니라, 문장의 참과 거짓을 결정하는 구성 요소였던 거예요.
그러니까 대치가 깨졌다고 해서 두 사람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에요. 그 문장의 자리가 사람만 가리키는 자리가 아니라 그 사람을 부르는 이름까지 함께 쓰는 자리였다는 뜻이에요.
계약서 서명란도 같은 경우예요.
- 그 계약서에는 대표이사가 서명했어요.
- 그 계약서에는 김민수 씨가 서명했어요.
김민수 씨가 그 회사 대표이사라고 해도, 두 문장은 같은 문장이 아니에요. 앞의 문장은 회사 대표 자격으로, 뒤의 문장은 개인 자격으로 서명한다는 차이가 있어요. 법무팀이 서명란의 직함 표기에 유난히 예민한 이유가 이거예요. 사람이 같아도 그 자리에 어떤 이름으로 들어갔느냐가 효력을 바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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