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로자 51.8%가 업무에 AI를 쓰는 환경에서
높은 AI 활용률과 생각의 외주화를 함께 살피며, 측정된 결과와 우려를 구분해요
AI·테크한국 근로자 63.5%가 생성형 AI를 써봤어요
한국은행이 지난여름 내놓은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63.5%가 생성형 AI를 써봤고, 업무 목적으로만 좁혀도 51.8%가 쓰고 있어요. 미국(26.5%)의 약 두 배죠. 확산 속도는 더 놀라워요. 인터넷이 상용화되고 3년 뒤 활용률이 7.8%였는데, 지금 AI 활용률은 그보다 8배 높아요.
더 눈에 띄는 건 사용 시간이에요. 한국 근로자는 AI에 주당 5~7시간을 쓰는데, 미국은 0.5~2.2시간이에요. 하루 한 시간 넘게 붙들고 있는 헤비 유저 비중은 78.6%, 미국(31.8%)의 두 배가 넘어요.
AI를 오래, 자주 쓰다 보면 도구를 선택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고 일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져요. 이런 상황에서는 “조심해서 쓰면 된다”는 대응이 생각만큼 잘 통하지 않아요.
AI는 골라 쓰는 도구가 아니라 일하는 조건이 됐어요
같은 조사에서 조직이 AI 사용을 권장한다고 답한 비율이 61.2%였어요(나우앤서베이, 직장인 1,000명). 절반이 훌쩍 넘는 직장인이 “쓰라”는 압력 속에서 AI를 켜고 있다는 뜻이에요.
여기서 ‘도구’라는 단어를 다시 볼 필요가 있어요. 도구는 정의상 내가 쥐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물건이에요. 망치는 쓰고 나면 서랍에 넣어두면 되죠. 그런데 주당 5~7시간, 하루도 빠짐없이 켜는 무언가를 우리가 정말 ‘내려놓을 수 있는 도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도입 전에는 하루 업무가 빈 문서에서 시작됐지만, 지금은 프롬프트 창에서 시작돼요. 쓸지 말지 내가 고를 수 있는 게 도구라면, 일하는 조건 자체가 되어버린 것은 환경이에요. 지금 AI는 후자에 가까워요.
한 가지 더 묘한 숫자가 있어요. 한국은행은 AI 덕에 근로자 업무시간이 평균 3.8% 줄었다고 봤어요. 주 40시간 기준 1.5시간이에요. 그런데 같은 조사에서 “AI를 써도 업무시간이 줄지 않았다”고 답한 비중이 54.1%였어요. 절반이 넘는 사람은 시간을 아끼지도 못하면서 계속 쓰고 있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아끼려고 쓰는 게 아니라, 이미 그렇게 일하는 환경 안에 들어와 있어서예요. 주변의 업무 방식이 이미 AI 사용을 전제로 바뀌면 혼자 쓰지 않기로 결정하기가 어려워져요. 옆자리 동료가 다 AI로 초안을 뽑는데 나만 백지에서 시작할 수는 없으니까요.
실제로 이 환경은 은근한 압박으로도 나타나요. 같은 계열의 조사에서 AI 도입 이후 스트레스가 늘었다는 응답이 27.3%였는데, 그 원인 1위가 ‘변화 속도에 대한 압박’이었어요. 도구라면 마음에 안 들면 안 쓰면 그만이에요. 하지만 환경은 안 쓰는 것 자체가 뒤처지는 느낌을 줘요. 쓰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상태라면, 이미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도구의 단계를 넘어선 거예요.
신중하게 쓰는 팀에서도 판단력이 떨어져요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은 오래전에 이런 말을 남겼어요. 우리가 어떤 매체를 두고 “그걸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순간, 이미 그 매체에 홀린 거라고요. 그는 매체의 ‘내용’을, 도둑이 집을 털기 전에 감시견 앞에 던져주는 고깃덩어리에 비유했어요. 개가 고기에 정신이 팔린 사이 도둑은 유유히 집을 털죠. “내용만 잘 고르면 된다”는 우리의 방심이 정확히 그 고깃덩어리예요. 우리가 어떤 프롬프트를 넣을지 고민하는 동안, 정작 우리의 사고방식 자체가 조용히 바뀌고 있어요.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걸 게슈텔1이라는 말로 설명했어요. 도구는 우리가 쓰는 동시에 우리를 특정한 존재로 몰아세워요. 의자를 떠올려 보세요. 의자는 “앉아라, 앞을 봐라, 얌전히 있어라”라고 우리 몸을 조용히 명령해요. 우리가 의자를 쓰는 것 같지만, 의자도 우리를 앉은 자세의 인간으로 만들어요. AI도 답을 정리하고 선택지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판단과 상상에 영향을 줘요.
한 기술비평 에세이에는 60만 명 규모 회사의 사례가 나와요. AI를 가장 신중하게 쓰는 팀이, 오히려 ‘안전한 선택’과 ‘좋은 선택’을 구별하는 능력을 가장 먼저 잃더라는 거예요. 실무에서는 이렇게 나타나요. AI는 늘 무난하고 평균적인 답을 잘 내놔요. 그 답을 계속 받아들이다 보면, 무난한 안과 탁월한 안을 가르던 감각이 점점 무뎌져요. 남들과 다른 선택을 스스로 판단해 밀어붙여 보는 경험이 줄어들기 때문이에요. 이 부작용은 조심해서 쓰는 사람에게도 나타나고, 오히려 더 먼저 나타나요. 조심해서 쓰고 있다는 생각이 스스로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는 근거로 쓰이기 때문이에요.
이걸 뇌 활동으로 들여다본 연구도 있어요. MIT 연구팀이 5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인데요(아직 동료심사를 거치지 않은 예비 결과라 단정은 일러요). 참가자를 AI 사용군, 검색엔진군, 맨손군으로 나눠 에세이를 쓰게 하고 뇌파를 쟀더니, AI 사용군의 신경 연결이 가장 약했어요. 연구팀은 이걸 인지부채2라고 불렀어요. 더 인상적인 건 이거예요. AI를 쓴 참가자의 3분의 2가 자기가 방금 쓴 글의 주제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어요. 결과물은 나왔지만 내용이 머리에 남지 않은 거예요. 마지막 세션에서 이들을 다시 맨손으로 돌려보냈더니, 신경 연결은 여전히 약한 상태로 남아 있었어요. AI를 잠시 쓰지 않아도 이 상태가 바로 회복되지는 않는다는 뜻이에요.
흥미롭게도 비슷한 경고를 종교계에서도 했어요. 교황 레오 14세가 올해 5월 내놓은 회칙3 ‘마니피카 후마니타스’에는 기술은 결코 중립이 아니라는 문장이 나와요. 그것을 만들고 규제하고 쓰는 사람의 성격을 그대로 닮기 때문이라고요. 교황은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당부하기도 했어요. AI가 내일 사라져도 스스로 생각할 줄 알도록 쓰라고요. 이 당부는 청소년만이 아니라 주당 5~7시간씩 AI를 쓰는 우리에게도 해당돼요.
AI에 넘길 ‘커브’와 직접 올라야 하는 ‘산’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도구 제작 연구자는 우리가 덜어내려 하는 불편을 두 종류로 나눠 설명해요.
하나는 ‘커브’예요. 휠체어 이용자 앞을 가로막는 연석처럼, 존재할 이유가 없는 장벽이에요. 이건 깎아내는 게 맞아요. 접근성을 설계하는 사람들은 커브를 깎는 걸 진보라고 불러요. 반복적인 서식 정리, 회의 일정 조율, 포맷 변환, 자료의 1차 요약 같은 일이 여기 속해요. 이런 일은 AI에 넘겨도 잃을 게 없어요. 오히려 여기 쓰던 시간을 아껴 더 중요한 데 써야 맞고요.
다른 하나는 ‘산’이에요. 산은 오르는 과정 자체가 목적이에요. 헬스장을 떠올려 보세요. 로봇이 대신 역기를 들어주면 아무 의미가 없죠. 무게를 옮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드는 내가 바뀌는 게 목적이니까요. 낯선 분야를 처음부터 이해해보는 일, 어려운 의사결정의 논리를 스스로 세워보는 일, 글의 구조를 밑바닥부터 잡아보는 일이 여기 속해요. 미야자키 하야오는 삶의 번거로움이 다 사라지면 우리가 그걸 오히려 다시 그리워하게 될 거라고 했어요. 어떤 어려움은 겪는 과정에서 실력을 키워줘요.
문제는 대부분의 직장인이 산과 커브를 나눌 언어를 갖고 있지 않다는 거예요. 그래서 둘을 구분하지 않고 똑같이 AI에 넘겨버려요. 둘 다 겉으로는 똑같이 ‘귀찮은 일’로 보이거든요. 지루한 서식 정리(커브)와 논증을 처음부터 세워보는 연습(산)을 모두 “AI야 해줘”로 처리하죠. 앞의 것은 넘겨도 되지만, 뒤의 것을 넘기면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기를 기회까지 사라져요. 문제는 그 손실이 그날 바로 보이지 않고, 몇 달 뒤 “예전 같으면 금방 판단했을 일이 왜 이렇게 막막하지” 하는 순간에야 드러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위임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볼 질문은 하나예요. 이 일을 AI에 넘기면 시간만 아끼나, 아니면 나를 자라게 하던 마찰까지 같이 사라지나. 시간만 아끼는 일이면 망설임 없이 넘기세요. 마찰까지 사라지는 일이면, 적어도 결론은 내가 먼저 내보고 AI를 검산에만 쓰는 식으로 순서를 지켜야 해요. 이 질문 하나만 습관이 돼도, 무엇을 넘기고 무엇을 지킬지가 보이기 시작해요.
물론 산과 커브의 경계가 늘 뚜렷한 건 아니에요. 어제는 산이던 일이 충분히 익으면 오늘은 커브가 되기도 해요. 낯선 분야를 처음 이해할 땐 직접 씨름해야 하지만, 그 분야에 충분히 익숙해진 뒤의 반복 작업은 넘겨도 되죠. 그래서 이 구분은 한 번 정해두고 끝나는 게 아니라, 내 실력이 자라는 만큼 계속 다시 그어야 하는 선이에요. 귀찮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이 선을 다시 긋는 행위 자체가 내가 아직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해요.
오스왈드의 시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이야기에서 가장 무서운 대목이 “가장 신중한 팀이 먼저 무너진다”는 부분이에요. GTM 전략을 짜면서 여러 조직의 AI 도입을 지켜봤는데, 거버넌스를 촘촘하게 갖춘 팀일수록 오히려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역설을 자주 마주쳤거든요. 가이드라인이 정교할수록 “이건 승인된 방식이니까 괜찮아”라는 안심이 생겨요. 그 안심이 판단을 멈추게 해요. 제가 본 가장 위험한 신호는, 팀이 원본 데이터를 직접 보는 대신 AI가 정리해준 요약만 보고 의사결정하기 시작할 때였어요. 요약은 늘 매끄러워서, 그 아래 잘려나간 예외와 반례가 안 보이거든요.
그리고 여기엔 개인이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부분도 있어요. “AI는 쓰기 나름”이라는 말은 편리하지만, 개인의 마음가짐 문제로 돌려서 시스템의 문제를 가릴 수도 있어요. 환경을 설계하는 건 개인이 아니라 회사의 도입 정책, 평가 방식, 그리고 규제거든요. 그래서 저는 개인의 ‘현명한 사용법’만큼이나, 조직이 무엇을 자동화하고 무엇을 사람의 몫으로 남길지 설계하는 문제가 훨씬 크다고 봐요. 개인에게 산과 커브를 구분하라고 요구하려면, 조직이 먼저 어떤 업무를 AI에 넘겨도 되고 어떤 업무는 사람이 직접 해야 하는지 기준을 정해줘야 해요. 제가 컨설팅에서 자주 드리는 말이 있어요. ‘AI를 어디에 쓸까’보다 ‘AI를 어디에 쓰지 않을까’를 먼저 정하는 팀이 결국 더 멀리 간다고요. 무엇을 자동화하지 않을지 적어둔 목록이, 곧 그 조직이 사람의 판단으로 남기기로 한 영역이거든요.
마치며
정리할게요. 첫째, 한국은 AI를 세계에서 가장 깊이 쓰는 나라이고, 그래서 ‘도구에서 환경으로’의 전환을 가장 먼저 겪고 있어요. 둘째, 환경 안에서는 신중함만으로 방어가 되지 않아요. 셋째, 실무에서 필요한 건 어떤 일이 깎아도 되는 커브이고 어떤 일이 직접 올라야 하는 산인지 구분하는 판단이에요.
오늘 하루만, 지난 한 주 AI에 넘긴 일 하나를 떠올려 보세요. 그게 깎아도 되는 커브였는지, 오르는 게 목적이었던 산이었는지. 거창한 결심까지 필요하지 않고, 그 한 가지를 구분해 보는 것만으로도 다음 위임의 기준이 생겨요.
혹시 “이건 AI에 넘기지 말걸” 하고 뒤늦게 후회했던 업무가 있으신가요? 어떤 일이 유독 나에게 ‘산’이었는지 댓글로 들려주세요. 반응이 많으면 다음 호에서 ‘위임하면 안 되는 일’의 유형을 따로 정리해볼게요.
💬 어떤 일이 나에게 ‘산’이었는지 댓글로 남겨주세요. 다음 호에 반영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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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출처
- 한국은행, “AI의 빠른 확산과 생산성 효과: 가계조사를 바탕으로”, BOK 이슈노트 제2025-22호, 2025. 원문 ··· 오늘 글의 한국 숫자는 전부 여기서 나왔어요. 국가 비교표만 봐도 우리 상황이 얼마나 예외적인지 보여요.
- Nataliya Kosmyna 외, “Your Brain on ChatGPT: Accumulation of Cognitive Debt”, arXiv 프리프린트, 2025. 원문 ··· 표본 54명, 아직 동료심사 전이라 단정은 금물이에요. 다만 ‘AI 사용군이 자기 글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대목은 곱씹을 만해요.
- 교황 레오 14세, 회칙 “Magnifica Humanitas”, 2026. 원문 ··· “기술은 중립이 아니다”라는 한 문장이 이 글의 철학적 뼈대예요.
배경 지식
- Frank Elavsky, “Stop saying that AI is just a tool” ··· 산과 커브, 반복노동과 의미 있는 고통을 나누는 원본 논의예요.
- L. M. Sacasas, “Your AI Is Not a Tool” ··· ‘도구가 아니라 환경’이라는 이 글의 출발점이에요. 매클루언과 일리치를 잇는 계보가 정리돼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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