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3호

러다이트는 기계가 아니라 도입 조건에 저항했어요

어댑타비스트 조사에서 지식노동자 2,500명 중 65%가 AI 이전 방식을 그리워한다고 답했어요. 만드는 일이 확인하는 일로 바뀐 변화를 짚어요

사회러다이트는 기계가 아니라 도입 조건에 저항했어요

AI 졸업 연설에 돌아온 학생들의 야유

지난 5월 애리조나대학교 졸업식에서 어색한 장면이 있었어요. 연단에 선 사람은 구글 전 CEO 에릭 슈미트, 주제는 AI였는데 학생들이 야유를 보냈어요.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요. 슈미트는 결국 이렇게 말했어요. “여러분이 어떤 기분인지 알아요. 다 들려요.”

슈미트에게는 오래 쓰던 비유가 있어요. 로켓에 자리를 제안받으면 어느 자리냐고 묻지 말고 그냥 타라는 말이죠. 2001년 셰릴 샌드버그에게 해준 조언으로 유명해진 문장인데, 2026년 졸업식장에서는 통하지 않았어요.

1811년의 방직공도, 2026년의 졸업생도, 기계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두 집단 모두 정확히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이 기계를 누가, 누구를 위해, 어떤 조건으로 들여오는가. 200년 사이에 답은 바뀌었는데 질문은 그대로예요.


지식노동자 65%가 AI 이전 방식을 그리워하는 이유

컨설팅 기업 어댑타비스트가 2026년 3월 영국·미국·캐나다·독일·스페인의 지식노동자 2,500명에게 물었어요. 65%가 AI가 널리 퍼지기 전의 일하는 방식을 정기적으로 그리워한다고 답했어요.

여기까지는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예요. 그런데 세부 항목을 보면 그리움의 이유가 드러나요.

  • 42%는 AI가 아껴준 시간보다 AI 결과물을 검증하는 데 쓰는 시간이 더 많다고 답했어요
  • 52%는 동료가 AI로 만든 결과물을 정기적으로 고치고 있어요
  • 31%는 AI가 인간의 창의성을 깎아먹기 때문에 아예 없애는 쪽이 낫다고 봐요
  • 46%는 전문성이 필요하던 일을 이제 거의 누구나 할 수 있게 된 것에 좌절감을 느껴요

그러니까 이 향수는 “일이 적었으면 좋겠다”가 아니에요. 일의 성격이 바뀐 것에 대한 불만이에요. 만드는 사람에서 고치는 사람으로, 쓰는 사람에서 확인하는 사람으로 옮겨간 거죠. 저는 이걸 검증세1라고 부르는 게 정확하다고 봐요. 별도의 업무 시간이나 예산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쉬운 비용이거든요.

이게 개인의 인상이 아니라는 증거도 있어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2026년 2월 연구는 직원 약 200명 규모의 미국 기술기업 한 곳을 8개월간 직접 관찰했어요. 주 2회 현장에 나가고, 내부 메신저를 추적하고, 40여 명을 심층 인터뷰했죠. 연구 제목 그대로, AI는 일을 줄이지 않고 일의 밀도를 높였어요.

구체적으로 세 가지가 관찰됐어요. 첫째, 업무 범위가 넓어졌어요. PM이 코드를 쓰고, 리서처가 엔지니어링을 하고, 예전 같으면 외주 줬을 일을 직접 해요. 둘째, 경계가 무너졌어요. 자리를 뜨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프롬프트 하나만” 넣게 되면서 업무 사이에 쉬는 시간이 사라졌어요. 셋째, 동시에 열려 있는 작업 수가 늘었어요.

그리고 이 회사 사람들은 스스로를 더 생산적이라고 느꼈어요. 동시에 예전만큼, 혹은 예전보다 더 바쁘다고 답했고요. 생산성이 올랐다는 느낌과 더 바빠졌다는 응답이 한 사람 안에서 함께 나온 거예요.

여기에 반전이 하나 더 있어요. 어댑타비스트 조사에서 AI 이전 시대를 선호한다고 답한 비율이 Z세대는 42%, X세대는 26%였어요. 디지털 네이티브가 오히려 더 그리워하고 있는 거예요. 이 숫자 앞에서는 “적응 못 한 기성세대의 투정”이라는 해석이 성립하기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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