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9호

금과 석유 다음, 달러를 묶을 이름은 초지능이에요

정의는 그대로 두고 이름만 바꾼 행정명령을 읽어봤어요

비즈니스금과 석유 다음, 달러를 묶을 이름은 초지능이에요

스팸 필터도 법적으로는 ‘초지능’이 됐어요

9월 29일(현지 시각)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초지능 오찬(Super Intelligence Luncheon)‘이 열렸어요. 젠슨 황, 일론 머스크, 다리오 아모데이, 마크 저커버그, 순다르 피차이, 그렉 브록먼이 한 테이블에 앉았고,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 하나에 서명했어요. 제목은 「초지능 시대의 개막(Inaugurating the Era of Super Intelligence)」이에요. 연방 행정부 안에서 ‘인공지능(AI)‘이라는 말 대신 ‘초지능(SI)‘을 쓰라는 명령이에요.

image백악관 팩트시트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요. 지금의 기술은 인간 지능을 흉내 내거나 자동화하는 수준을 넘어섰으니, 그 가능성에 걸맞은 이름이 필요하다고요.

Fact Sheet: President Donald J. Trump Inaugurates The Era of Super IntelligenceUSHERING IN SUPER INTELLIGENCE: Today, President Donald J. Trump signed an Executive Order to replace the term “Artificial Intelligence” (“AI”) withwhitehouse.gov

그런데 행정명령 원문의 3조를 열어 보면 결이 다른 문장이 나와요. 이 명령에서 말하는 ‘초지능’은 미국 연방법 15 U.S.C. §9401(3)이 정의한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과 시스템을 뜻한다고 적혀 있어요.1 2020년 「국가인공지능이니셔티브법」에 들어간 정의로, 사람이 정한 목표에 따라 예측·추천·결정을 내리는 기계 기반 시스템이면 해당해요.

이 정의는 넓어요. 대화형 모델만이 아니라 쇼핑몰의 상품 추천, 카드사의 이상 거래 탐지, 메일함의 스팸 필터도 들어갈 수 있어요. 업계에서 초지능(superintelligence)은 보통 사람을 넘어서는 수준의 시스템을 가리키는데, 연방 문서에서는 이제 스팸 필터까지 그 이름으로 부르게 된 셈이에요.

기술의 정의가 한 글자도 안 바뀌었다면, 굳이 이름을 바꾼 이유는 기술 바깥에서 찾아야 해요.

행정명령이 바꾸는 것과 바꾸지 않는 것

2조가 정한 범위는 분명해요. 공문, 대외 발표, 웹사이트, 보고서, 정책 문서처럼 법령이 아닌 문서에서 ‘AI’ 대신 ‘SI’를 쓰고, ‘AI’라는 표현은 인정하지 않겠다고 해요.

바로 아래 항은 바꾸지 않는 것을 적어요. 이미 나온 규정, 대통령 명령, 계약, 보조금 같은 기존 문서는 고칠 필요가 없어요. 연방 조달 계약서에 적힌 ‘AI’는 그대로 남는다는 뜻이에요.

정의를 실제로 바꾸는 일은 뒤로 미뤄졌어요. 3조 (b)항은 과학기술 담당 대통령 보좌관(APST)2에게 60일 안에 ‘초지능’의 연방 정의를 담은 법안 문구를 제출하라고 해요. 기존 법적 정의를 고칠지, 넓힐지, 대체할지에 대한 검토와 관련 조항의 개정안도 함께요. 법률의 정의는 의회가 바꿔야 하니, 행정명령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예요.

dallor달러가 묶였던 자리, 금 그리고 석유

달러가 세계의 돈이 된 과정에는 늘 ‘세계가 꼭 가져야 하는 것’이 붙어 있었어요.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각국 통화는 달러에, 달러는 금에 고정됐어요. 미국은 외국 정부가 가져오는 달러를 금 1온스당 35달러에 바꿔 주기로 했죠. 1971년 8월 15일 닉슨 대통령이 이 ‘금 창구’를 닫으면서 금과의 연결은 끊겼어요.

그 빈자리를 채운 게 석유예요. 1970년대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원유가 달러로 거래되고, 산유국이 번 달러가 다시 미국 국채로 돌아오는 구조가 자리 잡았어요. 흔히 페트로달러3라고 부르는 흐름이에요. 석유를 사야 하는 나라는 달러를 쌓아 둬야 했어요.

지금 지능의 가격표도 달러로 붙어 있어요. ChatGPT Plus, Claude Pro, Google AI Pro의 기본 요금제는 모두 월 20달러예요. 현지 법인을 둔 나라에서는 그 나라 통화로 결제를 받기도 해요. 20달러짜리 ChatGPT Plus가 한국에서는 29,000원, 인도에서는 1,999루피예요. 하지만 이 값은 20달러에 환율을 적용해 미리 정해 둔 가격이에요.

결제 통화가 원화나 루피로 바뀌었을 뿐, 기준은 여전히 달러예요. 제281호에서 계산한 지역화 비율로 보면 그 현지 가격은 한국에서 미국 가격의 102%, 인도에서 115%였어요. 현지 통화 요금이 달러 가격보다 싸게 붙은 곳이 아니었던 거예요. 그 지능을 돌리는 가속기도 달러로 사는 수입품이에요. 어제 나간 제281호에서 지능시간 지수로 계산해 보니, 2023년에서 2025년 사이 한국은 최저임금을 로그 기준 4.17포인트 올렸는데 원화는 달러 대비 8.57포인트 떨어졌어요. 최저임금 노동자가 살 수 있는 지능의 양을 최저임금위원회보다 외환시장이 두 배 더 크게 흔든 거예요.

미국 정부도 이 가격표를 상품 묶음으로 내보내려 해요. 2025년 7월 23일 서명된 행정명령 14320은 상무부에 ‘미국 AI 수출 프로그램’을 만들라고 했어요. 칩·서버·가속기, 데이터센터 저장장치, 클라우드, 네트워크, 데이터 파이프라인, 모델, 보안, 산업별 응용까지 하나로 묶은 ‘풀스택 패키지’를 동맹과 파트너 나라에 수출하고, 연방 금융 수단으로 뒷받침하겠다는 내용이에요. 이번 초지능 팩트시트도 미국의 SI 리더십을 세계로 넓히는 일을 성과 목록에 올려 두었어요.

두 쪽짜리 서약서가 약속한 것

같은 날 오찬에서는 문서가 하나 더 나왔어요. 「초지능에 관한 백악관 협약: 프런티어 SI 책임에 관한 공동 약속」이에요.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서명한 사람은 피차이, 머스크, 아모데이, 저커버그, 브록먼, 황 여섯 명이에요. 오찬에 참석한 제프 베이조스와 알렉스 카프는 서명자 명단에 없었어요.

법률 전문 매체 MLex의 요약에 따르면 내용은 네 가지예요. 각 회사가 프런티어 모델 안전을 위한 내부 통제4를 만들고, 그 통제를 맡을 내부 팀을 두고, 외부 감사인에게 그 팀의 일을 검토받고, 이사회 안에 이 일을 감독할 위원회를 두는 거예요.

법적 구속력은 없어요. 하원의장 마이크 존슨은 업계의 자발적 약속이라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도덕적 구속력”이 있다며 거의 헌법 같은 문서라고 불렀어요. ABC 보도에 따르면 공개된 문서 화면은 세부가 빈약하고, 이 약속이 법이나 규정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 밝히면서 앞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은 열어 둬요. 서명 시점에 대해 The Hill은, 최근 몇 달 사이 여러 AI 회사의 에이전트가 다른 회사를 해킹한 일로 업계가 강한 비판을 받는 중이라고 전했어요.

내부 통제, 전담 조직, 외부 감사, 이사회 위원회는 상장사의 회계 부정을 막으려고 쌓아 온 장치와 같은 순서예요. 차이는 기준에 있어요. 이번 협약 보도에서는 무엇을 ‘안전하다’고 판정할지 정한 공통 기준, 감사인의 자격, 감사 결과의 공개 여부가 확인되지 않아요. 7월에 하사비스가 제안한 출시 전 독립 검토나 업계 공동 기구도 보도된 내용에는 나오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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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표에 앉은 수출 패키지

오찬 좌석표라며 온라인에 공유된 문서가 있어요. 트럼프 대통령 양옆에 젠슨 황과 머스크가 앉은 배치는 CNBC가 전한 현장 사진 설명과 같아요. 좌석표의 이름을 업종별로 다시 묶으면 이래요.

묶음좌석표의 이름
반도체·메모리젠슨 황(엔비디아), 리사 수(AMD), 혹 탄(브로드컴), 산제이 메로트라(마이크론)
클라우드·플랫폼사티아 나델라(마이크로소프트),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모델다리오 아모데이·톰 브라운(Anthropic), 그렉 브록먼(OpenAI), 순다르 피차이(구글), 마크 저커버그(메타), 일론 머스크
보안·공급망 리스크니케시 아로라(팰로앨토 네트웍스), 브랜던 라바 대니얼스(엑시거)
응용·데이터빌 맥더멋(서비스나우), 알렉스 카프·시얌 산카르(팔란티어)
투자차마스 팔리하피티야(소셜캐피털), 브래드 거스트너(알티미터), 데이비드 색스(크래프트벤처스)
정부·의회부통령,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러트닉 상무장관, 마이클 크라치오스, 재러드 아이작먼(NASA) 등

행정명령 14320이 나열한 풀스택 패키지의 층과 이 표를 나란히 놓으면 거의 겹쳐요. 칩과 메모리, 클라우드, 모델, 보안, 응용이 한 테이블에 있고, 수출을 맡는 상무장관과 재무장관이 같은 자리에 앉았어요. 안전 협약에 서명한 건 이 가운데 모델 회사와 엔비디아뿐이에요.

협약이 안전의 언어라면, 좌석표는 공급망의 언어로 읽혀요. 이날 백악관에 모인 건 초지능을 만드는 회사들이면서, 동시에 한 묶음으로 팔릴 수 있는 회사들이었어요.

오스왈드의 시선

어제 지능시간 지수를 다룬 제281호 끝에 이렇게 썼어요.

예전엔 금, 그리고 석유로 묶여 있던 달러가 이제는 인공지능으로 묶이는 거죠. 이번에 미국이 인공지능을 굳이 Super Intelligence로 바꿔 부르겠다는 건 괜한 포석이 아니에요.

그 글에서 확인한 숫자가 이 문장의 바탕이에요. 원화로 내든 루피로 내든 구독료는 20달러를 기준으로 매겨지고, 한국 최저임금 노동자가 살 수 있는 지능의 양은 최저임금위원회보다 환율이 더 크게 흔들었어요. 금을 가지려면 달러가 필요했고, 석유를 사려면 달러가 필요했듯, 이제 지능을 사려면 달러가 필요해요.

그렇게 보면 행정명령이 정의를 그대로 둔 채 이름만 바꿨다는 점이 오히려 의도를 드러내요. 연방 공무원의 업무 용어를 정리하려는 거라면 이름보다 정의를 먼저 손봤을 거예요. 이름부터 바꾼 건, 동맹국에 풀스택 패키지로 팔려 나갈 상품에 가장 비싼 이름표를 먼저 붙이는 일에 가까워요.

마치며

60일 뒤 APST의 법안 문구가 나오면, 이 이름이 정의까지 바꿀지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그 전까지 연방 문서의 ‘SI’는 2020년 법에 적힌 ‘AI’와 같은 말이고, 결제 통화가 무엇이든 그 가격표의 기준은 달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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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안광섭 (오스왈드)은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INLEVEL9 전략 컨설턴트입니다. 경력, 연구, 저서와 최신 활동은 저자 소개에서 계속 갱신합니다. 최근 소식 · 2026년 8월: 2026 세종도서 교양부문 우수도서 선정.

📝 용어 설명

각주

  1. 15 U.S.C. §9401(3): 2020년 「국가인공지능이니셔티브법」이 정한 미국 연방법상 인공지능 정의예요. 사람이 정한 목표에 따라 현실이나 가상 환경에 영향을 주는 예측·추천·결정을 내리는 기계 기반 시스템을 말해요. ↩

  2. APST(Assistant to the President for Science and Technology): 과학기술 담당 대통령 보좌관이에요. 이번 행정명령에서 ‘초지능’의 연방 정의를 담은 법안 문구를 60일 안에 대통령에게 제출하는 역할을 맡았어요. ↩

  3. 페트로달러: 원유가 달러로 거래되고 산유국이 번 달러가 미국 국채 등으로 다시 들어오는 흐름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1970년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협력을 계기로 굳어졌다고 설명되지만, 공식 협정의 범위와 성격을 두고는 해석이 갈려요. ↩

  4. 내부 통제: 조직이 스스로 정한 규칙이 실제로 지켜지는지 확인하려고 만든 절차와 점검 장치예요. 상장사 회계에서는 내부 통제를 외부 감사인이 검토하고, 그 결과를 이사회 감사위원회가 감독하는 구조가 일반적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