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에 설계된 기계, 핵심은 저장이 아니었어요
버니바 부시의 메멕스는 책을 쌓아두는 기계보다 생각이 지나간 길을 남기는 기계에 가까웠어요
비즈니스전쟁이 끝나기 전에 쓴 평화의 숙제
1945년 7월, 미국 잡지 『애틀랜틱 먼슬리(The Atlantic Monthly)』에 「As We May Think」라는 글이 실렸어요.1 쓴 사람은 버니바 부시(Vannevar Bush)예요. 전쟁 기간 미국 과학연구개발국(OSRD)을 이끌며 과학자 약 6,000명의 연구를 조율한 사람이었어요. 잡지 편집자는 글 앞머리에 그 이력을 소개하면서, 이 글이 싸움이 끝난 뒤 과학자들이 붙들어야 할 다음 과제를 내놓는다고 적었어요.
글이 실린 시점에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축약본은 같은 해 9월 10일 자 『라이프(Life)』에 다시 실렸는데, 두 판본 사이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가 있었어요.2
부시가 과학자들에게 내민 숙제는 기록이었어요. 연구는 산처럼 쌓이는데, 연구자 한 사람은 다른 수천 명이 내놓는 결론을 이해할 시간도, 기억할 시간도 없다고 했어요. 그는 멘델의 유전 법칙을 예로 들어요. 그 논문은 이해하고 이어갈 수 있는 소수에게 닿지 못해 한 세대 동안 묻혀 있었고, 부시는 비슷한 일이 지금도 주변에서 되풀이되고 있을 거라고 봤어요. 기록은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는데 그 미로를 뚫고 필요한 항목을 찾아가는 방법은 돛단배 시절과 같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어요.
이 글은 흔히 웹을 예언한 글로 소개돼요. 이번 호에서는 원문을 순서대로 따라가면서, 부시가 어떤 문제를 쉽게 풀릴 문제로 봤고 어떤 문제를 끝까지 붙들었는지 나눠 볼게요.
저장은 몇 문단 만에 풀렸어요
부시가 기술을 볼 때 먼저 따진 건 성능보다 값과 고장률이었어요. 그는 라이프니츠가 이미 두 세기 전에 계산기를 만들었지만 쓰이지 못했다고 짚어요. 대량생산 이전이라 기계를 만드는 데 드는 노동이 기계로 아낄 노동보다 컸고, 연필과 종이로도 같은 일을 할 수 있었고, 자주 고장 나서 믿고 맡길 수도 없었다는 거예요. 배비지의 기계도 아이디어는 옳았지만 제작비와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했다고 봤어요. 파라오에게 자동차 설계도를 줘도 부품 수천 개를 깎다가 왕국 재정이 휘청이고, 그 차는 기자까지 가는 첫 길에서 퍼졌을 거라는 농담도 덧붙여요.
1945년은 달랐어요. 부시가 꼽은 상징은 라디오에 들어가는 진공관이에요. 유리관 안에 거미줄 같은 금속을 정밀하게 배치한 부품인데, 길드 장인이 몇 달은 붙들어야 했을 물건이 수억 개 단위로 찍혀 나와 30센트에 팔리고, 소켓에 꽂으면 그냥 작동했어요. 복잡하면서도 싸고 믿을 만한 장치의 시대가 왔으니 뭔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출발점이었어요.
저장 문제는 이 논리로 빠르게 정리돼요. 당시 마이크로필름은 길이 기준 20분의 1로 줄여도 다시 키워 읽을 수 있었어요. 부시는 이를 100분의 1까지 가정하고, 필름 두께를 종이와 같다고 쳐도 부피가 1만분의 1로 준다고 계산했어요. 그러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성냥갑 하나에, 100만 권짜리 도서관이 책상 한쪽 끝에 들어가요. 인쇄술 이후 인류가 남긴 기록을 책 10억 권 분량으로 잡아도 이삿짐 트럭 한 대면 실어 나를 수 있다고 했어요. 필름 재료비로 치면 마이크로필름판 브리태니커 한 벌은 5센트, 우편 요금은 1센트 수준이라는 계산도 붙였어요.
부시는 이 계산을 끝내자마자 바로 선을 그어요. 압축만으로는 부족하고, 기록은 만들고 쌓는 데서 그치지 않고 찾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요. 오늘날의 큰 도서관도 실제로는 소수가 조금씩 들춰보는 데 그친다는 지적이 이어져요. 뒤에 나올 메멕스 설명에서도 그는 하루에 5,000쪽씩 넣어도 저장고를 채우는 데 수백 년이 걸린다며, 사용자가 마음껏 집어넣어도 된다고 적었어요. 그에게 저장은 이미 해결이 보이는 문제였어요.
기계에 넘길 생각, 넘기지 않을 생각
부시는 생각을 두 종류로 나눠요. 성숙한 생각에는 기계적인 대체물이 없지만, 창조적인 생각과 본질적으로 반복적인 생각은 전혀 다르다고 했어요. 숫자 열을 더하는 일은 반복적인 생각이라 오래전에 기계로 넘어갔어요. 그는 형식논리도 같은 범주로 봤어요. 전제를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계산기 정도의 실수율로 결론을 줄줄이 내놓는 기계를 릴레이 회로로 만들 수 있다고요.
이 구분에서 부시가 수학자를 정의하는 방식이 눈에 띄어요. 수학자는 숫자를 빨리 다루는 사람도, 미적분으로 방정식을 능숙하게 변형하는 사람도 아니라고 했어요. 높은 수준의 기호 논리를 다루고, 무엇보다 어떤 처리 방법을 고를지에 대해 직관적 판단을 하는 사람이라고 봤어요. 나머지는 자동차를 움직이는 일을 보닛 아래 기계장치에 맡기듯 맡겨도 된다고 했고요.
그런데 기록을 늘리고 계산을 기계에 넘기고 나면 상황이 오히려 나빠질 수 있다고 부시는 썼어요. 기록은 크게 늘릴 수 있는데, 지금 분량조차 제대로 찾아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는 기록을 쓰는 첫 동작을 고르기, 즉 선택으로 봤어요. 그리고 넓은 의미의 선택에서 당시 도구는 가구 장인 손에 들린 돌도끼 수준이라고 평했어요.
좁은 의미의 선택은 이미 기계가 하고 있었어요. 공장 인사 담당자가 직원 카드 수천 장을 분류기에 넣고 코드를 맞추면, 트렌턴에 살면서 스페인어를 하는 직원 목록이 금방 나와요. 전화 교환기는 다른 방식으로 고르고요. 100만 개 회선을 하나씩 훑지 않고 첫 자리 숫자로 범위를 좁혀 가며 한 회선에 연결해요. 부시는 두 방식 모두 훨씬 빨라질 거라고 봤지만, 그것만으로는 문제의 핵심에 닿지 않는다고 했어요.
사람의 머리는 색인으로 찾지 않아요
부시가 짚은 핵심은 색인 체계의 인위성이에요. 자료를 저장할 때 알파벳순이나 번호순으로 정리하고, 찾을 때는 대분류에서 소분류로 따라 내려가요. 사본을 만들지 않는 한 한 항목은 한 곳에만 있을 수 있고, 어느 길로 가야 찾을 수 있는지 정한 규칙은 번거로워요. 하나를 찾고 나면 체계 밖으로 나왔다가 새 경로로 다시 들어가야 하고요. 그다음 문장이 이 글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대목이에요.
“The human mind does not work that way. It operates by association.”
사람의 머리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 연상으로 움직인다는 말이에요. 한 항목을 붙잡으면 생각의 연결을 따라 다음 항목으로 바로 건너뛰어요. 부시는 머릿속 길에도 약점이 있다고 함께 적었어요. 자주 다니지 않는 길은 흐려지고, 기억은 영구적이지 않아요. 그래서 그는 기계가 연상의 속도와 유연함까지 따라잡기는 어렵겠지만, 꺼내 온 항목의 영속성과 선명함에서는 머리를 확실히 이길 수 있다고 봤어요.
이 구상을 담은 장치에 그는 즉석에서 이름을 붙여요. 메멕스(memex)예요. 한 사람이 자기 책과 기록과 서신을 모두 넣어두고 아주 빠르고 유연하게 찾아보는 장치이고, 그 사람의 기억을 크게 확장한 사적인 보조물이에요. 겉모습은 평범한 책상이에요. 상판에 비스듬한 반투명 화면 몇 개, 키보드, 버튼과 레버가 있고 한쪽 끝에 마이크로필름 저장고가 있어요. 레버를 오른쪽으로 조금 밀면 책장이 한 장씩 넘어가고, 더 밀면 10쪽씩, 더 밀면 100쪽씩 넘어가요. 투명한 판 위에 손글씨 메모나 사진을 올려놓고 레버를 누르면 바로 필름에 찍혀 들어가요.
부시는 여기까지를 기존 장치를 앞으로 늘려본 관습적인 그림이라고 했어요.
핵심 부품은 ‘묶기’ 버튼이었어요
메멕스의 본질적 기능으로 부시가 꼽은 건 연상 색인이에요. 어떤 항목이든 원할 때 다른 항목을 즉시, 자동으로 불러오게 하는 장치예요. 그는 두 항목을 묶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일이라고 못 박아요.
방법은 이래요. 사용자가 길(trail)을 하나 만들기로 하면 이름을 붙여 코드북에 적어요. 묶을 두 항목을 나란히 띄우고 키 하나를 누르면 두 항목이 영구적으로 연결돼요. 이후 둘 중 하나가 화면에 떠 있으면 버튼 하나로 다른 하나가 불려 나와요. 여러 항목이 이렇게 엮이면 책장을 넘기듯 레버로 차례차례 훑어볼 수 있어요. 부시는 흩어진 자료를 모아 새 책 한 권을 엮은 것과 같다고 했고, 한 항목이 여러 길에 동시에 들어갈 수 있으니 그 이상이라고 덧붙였어요.
그가 든 예시가 구체적이에요. 메멕스 주인이 활의 기원과 성질에 관심이 있어요. 특히 십자군 전쟁의 소규모 전투에서 짧은 튀르크 활이 왜 영국 장궁보다 나았던 것으로 보이는지 파고들어요. 백과사전에서 흥미롭지만 엉성한 항목을 찾아 띄워 두고, 역사책에서 관련 대목을 찾아 둘을 묶어요. 중간중간 자기 코멘트를 끼워 넣어요. 재료의 탄성이 관건이라는 게 보이자 곁길로 빠져 탄성 교과서와 물성표를 엮고, 손으로 쓴 분석 한 장도 넣어요.
몇 년 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화제가 사람들이 쓸모 있는 새 기술마저 이상하게 거부하는 문제로 흘러가요. 사거리에서 밀리던 유럽인들이 끝내 튀르크 활을 들이지 않았다는 사례가 딱 맞아요. 그는 코드북을 열어 그 길의 첫 항목을 띄우고, 레버로 훑다가 곁길로도 빠져요. 그리고 길 전체를 사진으로 복제해 친구에게 건네요. 친구는 그걸 자기 메멕스에 넣어 더 큰 길에 이어 붙여요.
이 장면에서 친구가 받은 건 “튀르크 활이 더 좋았다”는 결론 한 줄이 아니에요. 어떤 자료를 어떤 순서로 읽었고 어디서 곁길로 빠졌는지, 그 사람이 직접 쓴 분석까지 담긴 경로 전체예요.
길을 내는 사람이 직업이 된다면
부시는 이 기능이 퍼진 뒤의 모습도 그려요. 연상의 길이 처음부터 촘촘히 깔린 새로운 형태의 백과사전이 나오고, 사용자는 그걸 메멕스에 넣어 더 키워요. 변호사는 자기 경험과 동료·권위자의 경험에서 나온 판례와 의견을 엮어 손끝에 두고, 변리사는 수백만 건의 특허에 고객 관심사로 이어지는 길을 깔아 둬요. 환자의 반응이 이상한 의사는 예전 비슷한 사례를 연구하며 만든 길을 따라 유사 병력을 훑고, 화학자는 화합물 사이의 유사성을 따라가는 길을 써요.
그리고 새 직업이 하나 생긴다고 했어요. 방대한 공동 기록 사이로 쓸모 있는 길을 내는 일을 즐거워하는 사람들, 트레일 블레이저(trail blazer)예요. 스승에게서 물려받는 것도 달라진다고 봤어요. 스승이 세상의 기록에 보탠 결과물뿐 아니라, 그 결과물을 세울 때 쓴 비계까지 제자에게 넘어간다는 거예요.
글의 마지막 대목에는 망각 이야기가 나와요. 문명이 너무 복잡해져서 기록을 더 기계화하지 않으면 한정된 기억력 때문에 실험을 끝까지 밀고 가지 못하고 중간에 주저앉을 거라고 했어요. 지금 당장 필요 없는 많은 것을 잊어도, 중요해지면 다시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 여정이 더 즐거워질 거라고도 했고요. 부시에게 기억 보조 장치는 더 많이 외우게 하는 도구라기보다 안심하고 잊게 해주는 도구였어요.
81년 뒤에 다시 읽는 메멕스
이 글이 실제로 누군가의 진로를 바꾼 기록이 남아 있어요. 더글러스 엥겔바트(Douglas Engelbart)는 1962년 부시에게 보낸 편지에서, 1945년 가을 필리핀 레이테섬 정글 가장자리의 적십자 도서관에서 이 글을 찾아 열심히 읽었다고 회상해요.3 그는 편지에서 사람의 지적 효율을 높이는 연구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며, 공군 과학연구국에 낼 보고서에 이 글을 길게 인용하게 해달라고 허락을 구했어요.
부시 자신은 이 그림을 무리한 예언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는 기술적 난점을 모두 무시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알려진 방법과 지금 빠르게 발전하는 요소에 붙어서 그렸다고 썼어요. 알려진 것을 연장한 예측에는 실체가 있지만, 모르는 것에 기댄 예측은 이중으로 꼬인 추측일 뿐이라고요. 메멕스가 네트워크가 아니라 마이크로필름이 든 책상으로 그려진 이유도 여기 있어요. 그가 손에 쥔 재료는 사진, 전화 교환기, 천공카드였어요.
81년이 지난 지금 저장은 부시의 계산을 한참 넘어섰고, 검색은 그가 말한 전화 교환기식 선택을 상상 이상의 속도로 해내요. 생성형 AI는 질문 하나에 여러 자료를 연결해 답을 만들어 주고요. 부시도 연상에 의한 선택이 언젠가 기계화될 수 있다고 썼으니, 이 방향 자체를 그가 배제한 건 아니에요.
다만 메멕스 안에서 길을 그은 건 사용자였어요. 길에는 그 사람이 붙인 이름이 있었고, 그 사람의 코멘트와 손글씨 분석이 끼어 있었고, 몇 년 뒤에도 흐려지지 않았어요. 친구에게 건넨 것도 결론이 아니라 경로였어요. 지금 우리가 AI에게서 받는 답은 대체로 반대쪽에 가까워요. 연결은 기계 안에서 일어나고, 받는 사람 손에는 결론이 남아요. 그 답을 믿을 근거나, 몇 년 뒤 다른 대화에서 다시 꺼내 쓸 길은 따로 챙기지 않으면 남지 않아요.
길이 흐려지지 않는다는 조건도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제215호 「버너스리가 고른 URL은 넉 달 만에 죽었어요」에서 다룬 것처럼, 웹의 링크는 주소를 계속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면 사라져요. 부시는 길이 영구적이라는 점을 기계가 머리를 이기는 지점으로 꼽았는데, 실제로 만들어진 연결망은 그 약속을 반만 지켰어요.
오스왈드의 시선
부시가 수학자를 정의한 방식을 다시 보면, 그는 기계에 넘길 일과 사람이 쥘 일을 작업 종류보다 판단의 위치로 갈랐어요. 어떤 처리 방법을 고를지, 어떤 두 자료를 묶을지, 그 길에 어떤 이름을 붙일지가 사람 몫이었어요. 결과물만 받아 드는 방식으로 도구를 쓰면, 계산이 빨라진 만큼 길을 내는 능력은 따로 쓸 일이 줄어들 수 있어요.
그래서 AI에게 일을 맡길 때 확인해 볼 질문은 답이 맞는지 하나로 끝나지 않아요. 내가 이 답에 이른 경로를 설명할 수 있는지, 그 경로를 몇 년 뒤의 나나 동료에게 넘겨줄 수 있는지도 함께 봐야 해요. 부시가 그린 트레일 블레이저는 자료를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료 사이에 쓸모 있는 길을 낸 사람이었어요.
마치며
부시는 글 끝에서 과학이 사람에게 잘 갖춘 집을 지어 주었고, 동시에 잔혹한 무기도 쥐여 주었다고 썼어요. 그리고 인류가 그 기록을 제대로 다루는 법을 배우기 전에 갈등 속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고 했어요. 그래도 여기서 과정을 멈추거나 희망을 접기에는 너무 아까운 단계라는 말로 글을 맺어요. 원자폭탄 투하를 몇 주 앞둔 시점에 쓴 문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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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 설명
- 메멕스(memex): 부시가 이 글에서 이름을 붙인 가상의 개인용 기록 장치예요. 책상 형태에 마이크로필름 저장고와 여러 개의 화면을 갖추고, 자료를 빠르게 불러오고 서로 묶을 수 있게 구상됐어요.
- 연상 색인(associative indexing): 한 항목이 다른 항목을 즉시 불러오도록 연결해 두는 방식이에요. 분류 체계를 위에서 아래로 따라 내려가는 기존 색인과 대비해 부시가 제안한 개념이에요.
- 마이크로필름: 문서를 사진으로 크게 축소해 필름에 담고, 볼 때는 확대 투사해서 읽는 기록 방식이에요.
- 과학연구개발국(OSRD):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의 군사 과학 연구를 조율한 정부 기구예요. 부시가 국장을 맡았어요.
각주
-
Vannevar Bush, “As We May Think”, The Atlantic Monthly, 1945년 7월호. 원문 주소: https://www.theatlantic.com/magazine/archive/1945/07/as-we-may-think/303881/ . 본문 인용과 요약은 Denys Duchier가 1994년 4월 작성한 전자판 PDF를 기준으로 했어요. ↩
-
Wikipedia, “As We May Think”. 『라이프』 1945년 9월 10일 자 축약본 게재와 두 판본 사이 원폭 투하 시점 관련. https://en.wikipedia.org/wiki/As_We_May_Think ↩
-
Douglas C. Engelbart, “Letter to Vannevar Bush and Program on Human Effectiveness”, 1962년 5월 24일. https://web.stanford.edu/class/history34q/readings/Engelbart/Engelbart_LettertoBush.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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